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킬러 같지만, 킬러는 아니다? 예측불허 2024 수능 뒷 이야기

민달팽이76 2024. 3. 4. 22:08

작년 11월 16일 치러진 2024 대학수학능력시험, 지난 6월 교육부는 사교육 경감 대책에 따라 공교육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킬러 문항’을 배제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는 쉬운 수능을 예상한 N수생들이 대거 합류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교육부가 킬러 문항 예시를 추가로 공개했지만 모호한 정의에 2024 수능 난도에 관심이 쏠렸다. 수능 문제가 공개되고 가채점 결과 일부 탐구 과목을 제외한 모든 영역의 난도가 높았던 것으로 나타났다. 일각에서는 ‘킬러 문항이 없어도 변별력을 갖춘 성공적인 수능’이었다고 평가했지만, 수험생과 수험생 부모들은 ‘수능 5개월을 앞두고 혼란스럽게 하더니 결국 뒤통수를 제대로 맞은 수능’이었다고 비판했다.

 

킬러 문항은 배제(?)됐지만 전반적인 난도는 상승

수능 당일, 올해 수능 출제위원장인 경인교대 사회교육과 정문성 교수는 “교 육부의 사교육 경감 대책에 따라 소위 ‘킬러 문항’을 배제했으며, 공교육 과정 에서 다루는 내용만으로도 변별력을 확보할 수 있도록 출제했다”고 밝혔다. 이때까지만 해도 수능 난도는 무난할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문제가 공개되 고 입시 기관과 강사들의 난도 분석, 일부 1~2교시만 치르고 탈주(?)한 수험 생 소식이 전해지며 수능 난도가 예사롭지 않았음이 확인됐다. A학부모는 “수능을 5개월 앞두고 킬러 문항을 배제한다는 발표를 들어 당황 스러웠다. 9월 모의평가에선 수학 난도가 낮았고, 학원에서도 고난도의 킬러 보다는 중난도 문항 중심으로 연습시키는 분위기였다. 수능 당일, 2024 수능 은 누가 실수하지 않는지가 중요하니 침착하게 보고 오라고 아이를 다독였 는데 예상치 못한 난도의 문제를 접하며 나만 어려운가 싶어 굉장히 불안했 을 것 같다. 킬러 문항 배제가 쉬운 문항 출제를 의미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았 지만 이렇게 전혀 다른 유형의 킬러 문항이 출제될진 몰랐다”며 하소연했다. 종로학원 임성호 대표이사는 “정부는 킬러 문항 없이 변별력을 확보했다고 평가하겠지만 수험생 입장에서는 예년보다 다소 쉬워질 것이라는 기대심리 에 배치된 시험이었다. 국어 수학 모두 최상위권 변별력 확보를 위해 노력한 것으로 보인다. 단적으로 수학 주관식 22번처럼 최상위권 변별을 요하는 문제의 난도가 크게 상승했다”고 설명했다. 높은 난도는 영어에서도 이어졌다. 9월 모의평가에서 영어 1등급 비율이 4.37%로 나타나면서 수능 영어는 9월 모의평 가보다 쉬울 것으로 예상했으나 실제론 비슷하거나 더 어려웠다는 분석이다. 그로 인해 절대평가인 영어로 수능 최저 학력 기준을 맞추려고 했던 수험생들은 어 려움이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공식적으로 ‘킬러 문항’은 없었다!? 수학 22번 오답률은 98.2%?

2024 수능은 공식적으로 킬러 문항은 없었다. EBS 강 사를 비롯해 뉴스에서도 ‘킬러 문항은 없었지만, 변별 력 있게 출제됐다’고 밝혔다. 지난 6월 ‘킬러 문항 배제’ 원칙이 발표되고, 킬러 문항의 정의에 대해 논란이 일 자 교육부는 2021~2023학년 수능과 2023년 6월에 치 러진 모의고사를 분석해 킬러 예시 문항을 공개했다. 특히 수학 킬러 문항의 요소로 ‘3가지 이상의 다수 수 학 개념 결합’ ‘복잡한 문제 해결 과정’ ‘특정 선택 과목 선택자에게 유리’ ‘풀이에 과다한 시간 요구’ ‘실수 유발’ 등을 지적했다. 2024학년 수능 수학 22번의 경우 다수 의 수학 개념을 요구한 것은 아니지만, 조건에 맞는 함 수의 그래프를 그리고 계산해나가는 과정이 복잡했다 는 반응이 우세하다. 특히 EBSi의 2024학년 수능 오답률 분석에 따르면 수 학 22번 문항의 정답률은 1.8%로, 오답률이 98.2%에 달한다. 수능이 종료된 이후 수험생 커뮤니티에선 “이 게 킬러가 아니면 뭐가 킬러냐” “시험은 어려웠는데 킬 러 문항이라고 말하지 못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킬러 문항의 유형이 바뀌었을 뿐 결국은 킬러” 등 대체 로 비슷한 반응을 보였다.

B학부모는 “수학 22번의 경우 정답률이 1.8%다. 그런데도 공교육을 벗어난 문제가 아니라고 한다. 교육부 의 말대로 공교육 교육과정 안에서 출제했음에도 재학생과 N수생을 통틀어 1.8%만 정답을 맞혔다면 교육이 잘못된 게 아닌가. 공교육만으로 수능을 준비할 수 있게 해 사교육을 경감시키겠다는 말과 대치되는 상황이라 씁쓸하다”고 전했다.

선택 과목 유불리 최소화했다는 평가원

가채점 결과 수학 선택 과목 유불리는 크게 벌어져

정 수능 출제위원장은 “선택 과목별 유불리를 최소화 했다”고 밝혔지만 가채점 결과 수학은 선택 과목별 유 불리가 크게 벌어졌다. 입시 기관이 제시한 선택 과목 별 등급에 해당하는 원점수는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EBSi는 <확률과 통계>는 원점수 92점, <미적분>은 84 점을 1등급 컷으로 보고 있다.

선택 과목별 원점수의 차이가 크게 벌어진 것도 문제 지만 선택 과목별 난도 차이도 문제가 됐다. 선택 과목 에서 <미적분>의 난도가 지나치게 높았고, <확률과 통 계>는 상대적으로 너무 평이했다는 것이 다수의 의견 이다. 실제 EBSi에 탑재된 <미적분> 선택자의 오답률 을 보면 공통 22번을 제외하고 오답률 2~4위가 30번 (오답률 96.3%), 29번(93.2%), 28번(84.7%)이었다. 특 히 28번은 객관식임에도 오답률이 상당히 높았다. 이런 상황이니 선택 과목별로 불만이 터져 나온다. <미적분>을 선택한 B수험생은 “다른 과목에 비해 공 부량도 많은데 난도가 이리 차이나는 건 공정하지 않 다. 공부한 만큼 결과로 보상받을 수 있는 시험이 좋 은 시험 아니냐”라고 반문한다. <확률과 통계>를 선택 한 C수험생도 “공통 22번 1문제를 틀려 96점을 받았는 데 백분위는 <미적분> 88점과 같은 98 정도인 것 같다. 불합리하다는 생각을 떨치기 힘들다”고 토로했다. 국어 선택 과목인 <언어와 매체> <화법과 작문>도 쉽 지 않다. <언어와 매체>는 공부를 제대로 해두면 시간 단축이 쉬웠는데 최근 난도가 높아지고, 2024 수능에 서는 긴 지문까지 등장해 풀이에 시간이 많이 걸렸다 는 얘기가 많다. 예비 고3의 선택 과목에 대한 고민이 점점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수능 수학, 공통 15문항 중 정답 ⑤가 단 1개

정답 번호 불균형으로 오답 유도했나

수능은 홀수형과 짝수형 문제지로 나뉜다. 정답 분포 가 홀수형은 일반적이라면 짝수형은 일반적이지 않다 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아 짝수형 시험지를 받게 되면 불안해한다. 2024 수능은 홀수형과 짝수형의 유불리를 최소화했다. 수학만 보더라도 공통 문항에서 6번과 8번 문항의 정답만 서로 바뀌었을 뿐 다른 문항의 선지를 같게 구성했다.

국가 자격증 시험을 비롯해 수능에서도 정답 번호의 개수를 비슷하게 하는 불문율이 있다. 그래서 한두 문 제를 풀지 못해 운에 맡겨야 한다면, 가장 적게 나온 번호를 선택한다. 그러나 2024 수능에서 그런 불문율이 깨졌다. 1번에서 15번까지 공통 15개 문항 중 ①이 5개, ②가 3개, ③이 2개, ④가 4개, ⑤가 1개였다. 선 택 과목에서 모르는 문제를 찍어야 했다면 ⑤를 고를 확률이 높을 수밖에 없었다. 특히 <미적분>에서 22번, 30번, 29번 주관식에 이어 오답률 4위가 28번이었는 데 정답은 ②였지만, ⑤를 택한 수험생이 37.4%로 높 았다.